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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전통음악

#3. 예술정책의 온도-2 : 예술가임을 증명하라 -‘예술활동증명’에 대하여-

by ontheRoad 2022. 2. 1.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남는 시간에 예술활동을 해야만 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지닌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예술적 성과를 거둘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지속가능한 예술활동이 보장되는 것은 모든 예술가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속가능성을 만들 수 있을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장르를 막론하고 한 명의 예술인이 꾸준히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주도할 수 있는 활동 시간이 필요하다. 아르바이를 하고 남는 시간에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컨디션이 좋은 상태로 몰입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주도적인 시간이야말로 예술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이다. ‘시간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계에 매몰되지 않을 만큼의 재정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고정적인 비용이 지출되지 않으면서 생활하는데 무리가 없을 만큼의 여유라면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예술활동에 충분히 집중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외부의 소음과 여러 가지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 또한 공간이 확보된다 해도, 활동하는 장르에 어울리는 공간인지 따져봐야 하겠지만 집중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예술활동의 질적 향상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다.

 

주도적 시간’, ‘생계에 매몰되지 않을 만큼의 재정그리고 독립적인 공간’. 각각의 예술적 조건에 대해 이후에 하나씩 더 깊이 다뤄보겠지만, 이 세 가지만 충족되더라도 한 명의 예술가의 세계가 충분히 여물고 자라 수 있는 만큼의 환경이 된다. 하지만 이 중 하나라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다면, 그 하나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두 가지를 소모하거나 희생 할 수 밖에 없다. 이 세 조건의 균형이야말로 예술가를 지탱해 주는 중요한 환경적 요인이 된다. 특히, 생애 주기별로 혹은 개인적인 성장의 단계에 있어서, 작품 활동에 가장 몰입해야 할 시기에 있는 예술가일 수록 이것은 생존의 지표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예술생태계 저변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이 세 가지는 단지 조건이 아닌 예술가로써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권리라고 해석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작품 활동에 집중하고자 치열하게 길을 찾는 예술인들이 만나게 되는 당연한 선택지가 있다면, 바로 정부지원사업이다. 국가에서 예술을 지원하게 된 것은 1972814, 법률 제 2337조로 제정 공포된 문화예술진흥법에서 시작되는데, 당시 정치와 경제적 발전에 중점을 두었던 시기인만큼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정부에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법이 만들어지면서 <문예중흥 5개년 계획>이 수립되었고, 이것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설립되어 현재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운영되고 있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르면 이 법은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전통문화예술을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민족문화 창달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은 문화예술의 영역을 포괄하기 때문에, 예술인 뿐 아니라, 관련 산업과 향유층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2011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된 이후, 예술활동을 위한 지원사업을 신청하려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활동증명을 해야 한다. ‘예술활동증명이란, “예술인 복지사업 참여를 위한 기본 절차로, 예술인 복지법 상 예술을 ''으로 하여 예술활동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제도인데, 쉽게 말하면 예술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내가 예술인인지 증명하는 제도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의 범위는 문학, 미술(응용미술), 사진, 건축, 무용, 음악, 국악, 연극, 영화, 연예(방송, 공연), 만화로 나뉘는데, 활동 유형에 따라 창작과 실연, 기술지원 및 기획으로 구분된다.

 

구분 내용
예술의 범위 문학/미술(응용미술)/사진/건축/무용/음악/국악/연극/영화/연예(방송, 공연)/만화
예술활동유형 창작/실연/기술지원/기획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른 예술의 범위와 활동유형

 

예술활동증명을 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신청절차가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따르면, 먼저 공개 발표 된 예술활동의 기록이나 예술활동에 대한 수입으로 증명하거나, 두 방법으로 안될 경우 자신의 예술활동을 기재해서 제출하는 방법 중 하나를 선택 한 후, 관련된 증빙자료를 준비하는 것이다. 준비된 자료를 가지고 예술인경력정보시스템에서 온라인으로 신청을 하게 되는데, 이 자료를 토대로 실적 또는 소득 기준부합 여부를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각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신청 내용을 검토, 결정하게 된다.

 

예술활동증명
방법확인(1)
신청 및 접수 행정심의 심사 및 결정
공개발표된 예술활동
예술활동 수입
예술활동 서술 기재
예술인경력정보시스템
(www.kawfartist.kr)
실적 또는
소득 기준부합
여부 결정
전문가 심의위원의
신청내용 심사·결정

[예술활동증명 신청 및 심의 절차]

 

예술활동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직업별 기준과 세부기준에 따라 최근에 활동한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는 각 분야별로 차이가 있다. ‘최근 활동에 대한 기준은 문학, 미술, 사진, 건축, 만화의 경우 5년지만, ‘음악, 국악, 무용, 영화, 연예의 경우 3년 이내의 활동만 인정이 된다. ‘영화의 경우 배우와 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의 직업별 기준에 따라 3년 또는 5년으로 구분해놓았다. 최근에는 예술활동증명 운영지침(개정)에 따라 코로나19’의 재난 기간(2020~2021)2년 간의 기간을 증빙 기간에서 제외해주었다. 구체적인 정보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홈페이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활동하는 분야가 다양하다면 중복해서 신청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예술활동증명을 한 이후 3년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정기적으로 갱신을 해야 한다. 6개월 전부터 재신청 절차를 통해 예술활동증명 자격을 유지 할 수 있다. 최근에는 과거 예술활동증명을 받은 적이 없는 예술인에 한해, 신진예술인을 위한 쿼터를 따로 두어서 ‘2년 이내 1회 이상의 직업 예술인으로서의 활동이 증명이 되면 예술활동증명을 해주는 신진예술인 예술활동증명도 시행하고 있어 예술인들이 제도에 접근하기 쉽도록 배려하고 있다.

 

구분 내용
3 문학, 미술, 사진, 건축, 만화, 영화(배우/비평)
5 음악, 국악, 무용, 영화, 연예, 영화(감독/작가/기획/기술지원)
개정 코로나19 재난 기간 2년만큼 산정기간 증가
(2022년 기준 : 최근 3-2017년 부터/최근 5-215년 부터)

[분야 별 예술활동증명 실적 산정 기준 기간]

 

나는 한동안 예술활동증명을 거부해왔다. 그 이유는 예술인으로서 나의 존재를 국가에게 또는 타인에게 증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예술인인 것을 누군가에게 증명하는 행위 자체가 모욕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2018년부터 시작해 코로나 시국까지 이어진 생계의 위기 가운데 정부지원사업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기에 결국, 예술인증명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예술정책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된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이 제도가 생겨난 취지와 과정을 충분히 이해했더라면 분명 태도가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 뿐 아니라, 처음부터 예술인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수렴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오히려 현장에서 크게 반겼을지도 모른다. 이는 최근 시행된 예술인 고용보험법등 또 다른 지원제도나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예술 정책과 현장 사이에 체감되는 온도 차이는 크게 느껴진다. 과정에 있어서 당사자성이 보장되지 않은 정책은 당연히 환영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의 예술활동증명 결과]

 

코로나19’라는 재난으로 사회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 중 하나는 예술지원에 대한 예술인의 인식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일 것이다. ‘예술지원이 왜 필요한가?’, ‘예술가를 왜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턱없이 부족했던 지난 시간들은, 코로나로 인해 최소한의 삶의 질 조차 보장받지 못한 예술인의 현실과 이에 못미치는 정부의 예술지원정책이 드러나며 큰 변화를 맞이했다. 특히 수십년 전부터 선진적인 예술정책을 펼쳐온 유럽의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제도와 정책에 관심이 없었던 예술인들이 늦었지만 입을 모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 죽거나,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야만 그제서야 필요성을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하루 빨리 바뀌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더 변화해야겠지만, 예술분야는 이제야말로 변화의 시작점에 섰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행정중심이 아닌, 예술인 당사자 중심으로 또 제도와 정책의 결정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전유물이 아닌, 지금을 사는 청년예술인과 청소년의 목소리까지도 충분히 경청하고 공함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