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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전통음악

#4. 그래서, 예술 정책이 나랑 무슨 상관인데?! -정책에 관심 갖기 어려운 거의 모든 전통예술인들에게-

by ontheRoad 2022. 2. 8.
예술만 잘 하면 상관없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기엔, 전통예술생태계의 저변은 너무 빈약합니다. 예술을 배우고 익히느라 10년이 넘는 시간을 써버린 청춘의 끝자락에서, 과연 예술가로 먹고 살아갈 자신이 있으신가요? 어떻게 하면 나의 예술이 지속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건명입니다.

전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빠져있다보면, 정작 예술이란 무엇인지 잠시 잊을 때가 있습니다. 전통이 먼저인지, 예술인 먼저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게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인지 모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곳에 오신 여러분들이 지금 서 있는 자리에는 전통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음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몇 년을 해왔던, 또 앞으로 몇 년을 더 해나가던 상관없이 오늘 이 자리에서는 지금, 여기에서바라보는 생태계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1. 세 번의 재난과 세 번의 위축

 

2014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해입니다. 교편을 잡고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나만의 진로문제로 머리가 아프던 30대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300여 명의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에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당연히 바로 구조되겠지. 하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결국 참사로 이어진 현실 앞에서 마치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어 버린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한 달간 제대로 수업도 하지 못한 채, 끝없는 죄책감과 무력감 속에서 무엇이 문제일까를 고민했던 기억입니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학생들이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상상과 함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월호 참사의 여파는 예술가들에게 들이닥쳤습니다. 국가 재난의 분위기 가운데 예술행사가 전면 금지된 것입니다. 그해 여름의 어느 늦은 밤, 집 앞 공원에 대금을 부는 친한 동생이 찾아왔습니다. 3개월 치 공연이 모두 취소가 되는 바람에 먹고살 길이 막막해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뒤이어 들려오는 주변 예술인들의 잇따른 소식은, 참사에 대한 애도의 방법으로 사회가 택한 공연 중단과 예술인의 생업 중단이 뒤섞인 내적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예술을 위로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하던 어느 날, 해외의 유명 가수들은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내한 공연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6블랙리스트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을 사찰, 검열하고 지원사업에서 일방적으로 배재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입은 대상은 9,0009,00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8,931명의 예술인과 342개의 예술단체,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헌법이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았습니다. 300여 명의 청소년을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비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예술인을 탄압하는 상황을 직면하는 현실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상처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습니다.

 

현 정부의 제 1공약인 블랙리스트 청산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시기에, 코로나19’라는 더 큰 재난이 찾아왔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 공연장 문은 가장 먼저 닫혔고, 왜 이번에도 예술을 멈춰야 하는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귀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먼 나라 독일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자마자, 전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이 전면에 나서 문화예술계를 살리는 것이 독일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데, 왜 아직도, 여전히, 국가적, 사회적 재난 앞에서 우리의 예술은 한 없이 초라해져야만 할까요?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크고 작은 위기 앞에서 누군가 대신 해결해주고, 정리해주길 바라며 침묵하고 방관한 결과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은 또 다른 예술계의 변화를 불러옵니다.

 

세계화를 위한 ‘K-산업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예술이 아닌 예술산업의 확장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로 온라인 비대면 영상 공연기술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방향성은 예술계 스스로의 고민과 성찰의 과정이 누락된 채, 예술인의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공연만으로 돈방석에 앉았다는 국내외 대중음악 스타들의 소식과 동시에, 모든 공연이 취소돼 쿠팡 하차장에서 일하느라 손목을 부여잡고 끙끙 앓는, ‘잘 나가던동료 예술인 이야기를 듣는 현실, 그야말로 초현실주의 작품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2년 만에 이렇게 급격히 변해버린 상황을 마주하니, 마치 개화기에 서구문물이 밀려들어와 어느새 현실이 되어버린 옛 선조들의 기분이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래도 기술 친화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을 돌아가 볼 틈조차 없이 누군가가 저의 손에 답안지를 쥐어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예술인이 빠져버린 예술계의 변화는 그다지 반갑지도, 유쾌하지도 않았습니다.

 

 

2. 예술가의 삶을 결정짓는 예술정책, 예술가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지난 7년 동안 겪은 세 번의 재난 가운데 점점 커져만 갔던 물음표는, 코로나로 인해 느낌표가 되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예술이 발전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갖고 노래하는데, 왜 예술가들의 눈물은 닦이지 않는가에 대한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해가다 보니,, 나름의 예술활동을 이어온 지난 20여 년간의 시간을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자리에서 변화를 위해 움직이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폭력적인 학교 문화에 반대하지 못했고, 부당한 상황 가운데 침묵해왔습니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도 질문하지 않고 따랐던 지난날들이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지난 일들을 쏟아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움직이고 나아가서 아주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보자는 의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다시 코로나로 돌아왔습니다. 저 또한 코로나 직격탄을 피해 갈 수 없었기에,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이제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코로나와 예술생태계에 대한 문제에 더 집중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SNS로 소통하는 전문가, 그 중에서도 예술분야와 관련된 기관이나 담당자에게 댓글을 달거나 쪽지를 보내는 등, 궁금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무모하다 싶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름의 관계가 형성되었고, 코로나 사태와 관련된 예술지원 제도와 정책에 대해 익숙해질 즘, 많은 분들의 노력을 통해 예술가를 위한 다양한 제도와 정책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술인 복지법*예술인 권리보장법**’, 그리고 예술인고용보험법***인데요, 저 또한 정책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모든 내용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통해 예술가의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예술가 스스로의 챙겨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도와 정책은 이처럼 거창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지나온 걸음을 돌아보면, 학교의 교칙과 시험제도, 입시제도, 장학제도, 콩쿨 및 취업 등 일상을 살아가는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소위, ‘위에서 정하는 대로순응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무엇이 더 나은 길인지, 이것이 정말 가장 좋은 방법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요구하는 것조차 해보지 못한 습성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통예술분야의 경우, 다른 어떤 분야보다 훨씬 수동적이고 방관자적 분위기가 강합니다. 그리고 왜 그런지도 우리는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이 이러한 변화가 결코 쉽지 않을 거란 것도 잘 압니다. 제가 작년부터 활동을 이어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는 이러한 현장의 작은 목소리들을 모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진행된 <아르코 대토론회> 또한 한 해동안 모아진 현장의 담론을 주제로 각 분야의 예술인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고요,, 지난 5월 부터는 서울에서부터 제주도까지 99개 권역을 차례로 돌며 지역의 예술인들 만나 현안을 나누는 귀한 자리도 마련했습니다. 여러분들과 같은 20대의 예술인들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예술가는 예술만 잘하면 되지.”라는 말이 참 멋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 또한 예술가로써 여기 계신 여러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기에 어떻게든 시험에 붙고, 입시에 붙고, 오디션에 붙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왔습니다. 자격을 얻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1시간 30분 분량의 악보를 수도 없이 외워갔고, 그와 동시에 생업을 위한 다양한 일들도 함께 병행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은 보다 복잡하고 입체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의 예술만 고집하기에는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의 성취가 누군가의 좌절이 되어야만 하는 이 구조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건가요? 좁디 좁은 동네 안에서 인정 받지 못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스스로를 자책하고, 좁은 방 안에 가둬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넓고, 여러분의 예술을 펼칠 기회도 훨씬 많습니다. 이전에 옳았던 것들이 지금은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을 사는 여러분이 기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예술정책 실현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

 

이제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남에게 맡기지 말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뜻을 모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면 모여서 토론하고 기록으로 남기며,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는 일련의 작업 또한 큰 도움이 됩니다. 정책은 현장을 위한 일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무엇이 변화해야 하는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내 주변은 물론이고, 나를 둘러싼 세상을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변화에는 언제나 부침이 따르기 마련이니까요. 결국 나의 권리와 미래에 대한 결정권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것이 됩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의 연구·창작·보급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설립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입니다. 이름만 보면 거창하기 이를 데 없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여러분과 이곳에 모인 분들처럼 예술의 현장에 있는 모두를 위해 고민하고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예술가를 위해 존재한다고 보면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기관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약칭 문예위또는 아르코라고 하는데요, 이곳에서는 여러분이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사업이 매년 진행됩니다. 보통 예술인들은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것만 생각합니다. 당장의 활동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그 이후는 사실 중요하지 않지요. 또 다음해의 지원에 기회를 노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지원을 하는 기관에서 실행하는 지원사업이 과연, 예술인 즉, 나를 위한 일인지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심사 기준은 명확한지, 지원 방법은 적절한지, 지원 과정은 공정한지를 살펴보며 동의하기 어렵다 싶으면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장소통소위원회는 이러한 현장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구입니다. 약칭, 현소위홈페이지는 익명으로 관리되기 때문에 예술의 현안에 대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매달 2회씩 열리는 정기 회의에서는 홈페이지로 올라오는 안건은 무조건 다루게 되어있기 때문에, 정책을 제안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구입니다.

 

뿐만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면, 예술인으로써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창구가 존재합니다. 예술대학생네트워크(예대넷)’도 있고, 서울문화재단의 청년예술청과 ‘서울청년예술인회의’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중앙 정부의 문화분권기조에 따라 각 지역이 자발적으로 예술생태계를 꾸려나가는 흐름을 갖기 때문에 자신이 거주하거나, 주로 활동하는 지역의 기초문화재단에도 언제든 참여의 기회가 열려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꿈을 이뤄가고 싶다면,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예술분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어떠한지 살펴가는 일은 연주 역량을 강화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합니다. 특히, 저변이 약하고, 수용층이 얇은 전통예술인들은 이미 지지도가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도 충분히 그만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나갈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겠지요.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을 만들어가는 제도와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은 아마 앞으로도 여러분의 예술가로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4. 나의 예술을 지켜낼 수 있는 항상성을 키우자

 

항상성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모든 생명의 특성 중 하나로, 자신의 최적화된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습성을 이야기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의 몸이 언제나 ‘36.5’를 유지하려고 하는 특성이 있는데요, 전통예술을 꾸준히 이어나가고자 하는, 혹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현하거나, 아니면 보다 대중적인 분야로 활동 방향을 잡고자 하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이 항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이없이 자기 자신과 부딪히고, 한계를 극복하고자 지속적으로 애써야 하는 예술분야의 경우,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어느 순간 무너지는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자신의 신념이든, 주변의 상황이든, 혹은 믿어왔던 관계든지 말이지요.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마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주변의 근육들을 키워가야 합니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도 좋고요,, 생각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습니다. 잘 쉬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오늘의 짧은 발제를 통해 여러분께 예술가를 위한 지원 제도와 같은 예술정책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당부드립니다.

 

그래서, 예술 정책이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고 물어보신다면, “나를 지키고,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답변드리고 싶습니다. 성과와 업적에 집착한 나머지 과정을 생략하면 일어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희생을 하게 되고,, 포기를 하게 되지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습니다. 또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상황에 순응해야만 한다면 더 괴롭겠지요.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습니다. 존재의 자격은 타인이 부여할 자격이 없습니다. 기술이든 정책이든 모두 우리의 예술을 위한 도구일 뿐이고, 그런 도구를 옆에 둔 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자신에게 맞도록 잘 사용한다면 여러 면에서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변화는 거창하고 화려한 것에 있지 않다고 믿습니다. 전통예술계의 변화를 원한다면, 지금, 여기에서부터 작은 목소리를 함께 모아갑시다.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예술인 복지 지원을 통해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돕기 위해 제정된 법. 이에 따라 <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되었다. 20111117일 제정.

** 예술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를 신장하며, 예술인의 지위를 보장하고 성평등한 예술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예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 2021924일 제정.

*** 고용보험법은 근로자가 아니면 가입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술인 고용보험제도를 통해 근로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법으로 정해진 예술인의 경우에 고용보험을 적용하고, 실업급여 및 출산급여 등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만든 제도. 2020, 1210일 시행.

***** 이 글은 지난 12월 22일 <2021 국악대학전 전체 워크숍>에서 미래의 예인들인 국악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발표한 발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