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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전통음악

#5. 지역을 중심으로 예술활동을 한다는 것은(청년예술인 아빠의 강동구 예술활동 분투기)

by ontheRoad 2022. 2. 25.

#1. 마지막 청년기에서 : 청년과 전통예술, 육아와 지역

‘청년, 예술가.’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으레 ‘청년’과 ‘예술가’ 사이에서 숨을 쉬게 된다. 청년이면 청년이고 예술가면 예술가이지.. ‘청년예술가’는 또 뭔가,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기 때문이다. 존재를 규정해야만 정책을 시행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인 구조 안에서 경계선상에 있는 수많은 존재들은 망설일 수 밖에 없다. ‘청년기본법’에 따르면 청년의 나이는 19세부터 34세까지이지만, 서울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는 39세까지로 보다 넓은 범위를 청년으로 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이제 내년이면 청년예술지원사업에는 도전하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한해를 보내왔다. 또 소위 ‘전통예술가’로 살아오며 ‘청년’과 ‘전통’이라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의 혼재된 존재로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갈등해왔다. 혈기 왕성하던 시기에는 ‘자국민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전통’이라는 생각에 계승을 주장하며 비판적인 눈으로 다른 장르를 바라봤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다양한 예술인들과 함께 활동해오면서는 지난 시간 왜 그리 날을 세우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30대에 접어들어 가정을 이루고 나니 눈 앞에 펼쳐진 삶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한쪽이라도 안정적인 직업이었다면 모를까, 예술인 부부로 육아와 예술활동을 겸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때로는 아기띠를 한 채 무대 리허설을 하고, 공연이 임박해서는 우는 아이를 모르는 사람에게 잠깐 맡긴 채 부리나케 무대에 올라갔다가 허둥지둥 내려온 적도 있었다. 그렇게 3년 정도 보내며 어느정도 적응을 했다고 생각한 시기에 코로나가 들이닥쳤다. 다들 그랬듯이 그나마 있던 공연이 연이어 취소 된 것도 있지만, 차가 없던 탓에 생활 반경이 살고 있는 지역 안으로 빠르게 좁아졌다.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한 아이들과 일상을 보내야 했기에 다른 지역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는 일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청년과 전통예술, 그리고 육아와 지역’이라는 혼재된 정체성들과 함께 혼란스러웠던 나의 예술활동은 점차 지역으로 집중되었고, 짧은 기간동안 삶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2. 2019년 ‘첫 시작’ : 발아점 그리고 지역성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난 참 자존심이 강한 예술가였다.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예술활동 증명을 거부했으며, 그동안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으니 예술가로서 자립이야 못하겠냐는 마음에 지원사업에 의존하지 않아온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렇게 맞이한 2019년은 혹독하기 그지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버텨오던 둑이 무너지듯, 예술가로서의 지조(?)를 지켜내기 위해 외면했던 현실적인 문제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술, 담배도 하지 않고 로또 조차 사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쌓여온 학자금대출과 결혼준비를 위해 받은 전세자금 대출의 상환 등이 몰렸던 것이다. 천만 다행으로 주변의 많은 분들이 나서서 도와주셨고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아직도 그 한 해는 ‘생존’이라는 단어로만 기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활동을 멈출 수 없었기에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우연히 ‘지역형 청년예술단 <서울청년예술단XOO구>’ 사업이 눈에 띄었다. 거주하는 지역에서 예술활동을 하기만 해도 매월 활동비와 함께 프로젝트 비용까지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상황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지원 조건을 맞추기 위해 미뤄오던 예술활동 증명도 신청하고(그때는 3주면 처리가 되었다!) 지원서도 열심히 작성했다. 다행이(?) 내가 거주하는 강동구는 다른 지역구에 비해 지원율이 저조했고, 우여곡절 끝에 최종 선정이 되었다.

6개월은 정말이지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나갔다. 지역을 알아가는 것과 동시에 계획했던 10번의 공연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강동구는 문화재단이 설립되기 전이라 구청 문화예술과에서 사업을 운영했는데, 사업의 시작과 동시에 담당 주무관이 변경되는 바람에 서로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문화재단 조차 없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지역형 청년 사업이었으니 기존 업무를 파악해야 했을 기관 담당자 입장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었을 듯하다. 지역도, 담당자도, 나도 처음인 이 사업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법도 했지만 그때는 뭐라도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공연은 지나가는 불특정 다수의 주민을 위한 버스킹이 아닌, 목적을 갖고 찾아가는 음악회의 성격으로 기획했다. 나름 차년도까지 지속할 수 있도록 지역예술생태계의 기반을 다지자는 취지였다. 우선 주민들이 많이 찾는 동네 까페를 찾아다녔다. 공연이 가능할 것 같은 장소를 소개 받아 의사를 여쭸고, 몇몇 까페에서 관심을 보여 공연을 계획했다. 당시 코로나 이전이었기에 어린이집에서도 관심을 보였고, 주민자치센터나 지역의 작은 대학교 공연장에서도 공연의 기회를 마련 할 수 있었다. 10곳을 선정하고 섭외하기 위해 20곳 이상을 연락하고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역예술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대체로 강동구 내에 문화 행사는 차고 넘치지만, 예술 작품이나 공연을 감상 할 기회는 거의 없다는 이야기였다. 대표적인 예로,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주 3회 연주를 하는 강동구의 한 재즈 피아니스트는 밤 늦은 시간 다른 동네에서 연주를 하고, 3만원도 안되는 연주비를 받아 할증료를 내고 택시로 귀가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무대를 지키지 않으면 예술가로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꼭 홍대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홍대가 아니면 어디란 말인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이후로 지역예술생태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시작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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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지역형 청년예술단 <서울청년예술단X강동구>

다음으로는 기존에 형성된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자에 대한 경험이었다. 여기에는 각종 협회로 대표되는 기성세대가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시간 거주하며 생활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전문예술가는 아니지만, 소위 지역의 핵심주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온 그룹이었다. 또 하나는 지역의 행사를 기획하는 그룹이다. 이들에 대한 경험이 특별하게 남아있는데, 청년예술단에 선정이 된 후 어느날, 구청에서 별도로 임명식을 할테니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현장에는 임명식 외에 몇몇 청년 기획자들과 지역 청년예술인이 구청장과 함께 지역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청년 기획자들은 지역의 문화행사를 늘려달라는 요구가 주요했고, 상대적으로 지역 예술의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던 청년 예술인들은 지역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입장차이를 확인 한 씁쓸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후 그 모임에 참여한 청년 기획자를 중심으로 우리 지역의 많은 사업(행사 및 축제)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또 다른 이질감을 느꼈다. ‘지역’으로 들어온 순간, 지역 내에서 가동되고 있는 이해관계자 간의 경제적, 정치적 관계의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야말로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 예술인 그룹이었다. 이들이야말로 지역예술의 핵심 역량으로 인정받아야 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을 통해 들은 우리 지역의 예술생태계에 대한 평가는 “강동은 예술의 불모지”라는 것이었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기대감에 가득찬 나의 말에 한 청년 예술인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겪어보면 안다고 무심히 답했다. 그리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3. 2020년 ‘더 넓게’ : 변곡점 그리고 다양성
우여곡절 끝에 <지역형 청년예술단x강동구>사업이 끝났고 2020년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지역에도 문화재단이 세워졌다. 전년도 지역예술사업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된 나는, 지역재단 설립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2020년에 진행될 청년예술단 사업에 꼭 동참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비단 나의 기회 때문만이 아니라, 6개월이 짧다 싶을 만큼 너무 좋았고 지역사회에 미칠 긍정적 영향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재단은 내부 정비로 정신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지역 예술인과의 만남도 생각보다 잘 이뤄지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쑥쓰러움을 무릅쓰고 몇차례 찾아가 재단 관계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르렀다. 사실 나의 기대는 재단에서 먼저 지역의 예술인들이 동네에서 지속적으로 활동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갖기를 바랬지만, 재단 상황을 들을수록 현실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급작스럽게 세워진 우리 지역의 재단은 구청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으로 채 자리잡지 못했고, 지역의 규모에 비해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보였다. 결국 나의 기대와 달리 2020년도 지역형 청년예술단 사업은 우리 지역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미 강동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확고했던 시기라 다른 지역을 둘러볼 마음이 없었다. 그러던 중 2020년 청년예술단 사업인 ‘015<0(Young) 아티스트, 15개의 서울>’에서 전년도 참여자를 중심으로 공동기획단인 워킹그룹을 꾸린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왕 지역에서 기회를 얻지 못했으니 사업 전체를 한번 경험해보자는 마음에 참여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무작위 추첨을 통해 워킹그룹에 선정되었고, 우리는 25개 지역구 중 15개 지역을 선정하는 과정부터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특히 몇 개 지역 현장에 직접 찾아가 면접을 참관하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개중에는 지역예술을 쉽게 바라보는 예술가도 있었지만 보다 깊은 관점으로 지역을 바라보며 자신의 예술세계와 접목하려는 예술가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거주지로서의 지역을 예술적 관점으로 재해석 하는 예술인도 인상적이었지만, 지방에 살다가 예술활동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 자리를 잡은 예술인들이 바라보는 지역의 새로운 관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비록 코로나19로 제대로 된 대면 회의 조차 갖기 어려웠고, 지역 예술인들과의 충분한 교감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마지막 모니터링에서 드디어 대면한 몇몇 예술인들과 그들의 작품은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할 만큼 훌륭했다. 그런 면에서 2020년의 청년예술단 사업는 서울 지역 전체를 바라보며 그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다양성을 관찰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020 <015 : 0(Young) 아티스트, 15개의 서울>

같은 지역 안에서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예술적 다양성이야말로, 일정한 규격을 정해놓고 효율적인 업무를 이뤄내야 하는 행정 분야가 간과할 수 밖에 없는 지역사회의 가변성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예술의 공공성’을 무기로 지역 예술의 형태와 방향성을 사전에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왜곡된 관점인지를 깨달았다. 15개 지역구를 두루 살피며 면면을 관찰할 수 있었던 한 해 동안의 경험은, ‘우리 동네 강동구’의 예술생태계에 대해 다시 한 번 꿈을 꿀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어 주었다. 또한 ‘포스트-코로나’가 간절했던 당시 예술계의 상황을 바라보며, ‘건강한 지역예술생태계 조성’이야말로 예술가들의 지속가능성을 담보 할 수 있는 미래적 대안이라는 확신이 들기에 충분했다.

#4. 2021년 ‘더 깊이’ : 임계점 그리고 관계성
‘지역예술’이라는 방향성을 붙들고 보낸 3년이었다. 내 개인의 예술활동보다 ‘지역’이라는 하나의 관점을 우선으로 이렇게 매진 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2019년에는 거주지에 불과했던 강동구를 예술활동의 거점으로 바라보며 ‘지역성’과 ‘공공성’을 고민하게 되었다면, 2020년은 서울시내 15개 지역구을 대상으로 한 워킹그룹에서의 공동기획 활동을 통해 조금 더 넓은 관점으로 지역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사이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내에서도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2019년 청년예술단 활동을 계기로 구청에서 종종 공연 요청이 들어왔었는데, 거리두기 격상단계에 따라 공연이 일방적으로 취소되기도 했다. 한번은 당일 오전에 줌 행사로 변경되는 바람에 공연을 취소해야겠다며 담당자께서 연락을 주셨다. 이런 경우가 나 뿐 아닐거란 생각에 –담당자의 결정은 아니겠으나- 몇마디 거들었다. 계약서를 쓰고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지, 그리고 천재지변에 대한 일부 보상이 필요한 건 아닌지, 전업예술가에게 공연취소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일반적인 중도 계약 해지만 해도 위약금이 발생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왜 예술가에겐 통보를 하는지. 작은 공연이 취소된 것 뿐이지만 그에 따른 시간적 기회비용을 생각하니 부아가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보내고 나니 한편으로 불편한 마음이 불쑥 찾아왔다. 그나마 다행히 담당자께서는 그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며 경청해주셨지만 이후 한동안 공연 연락이 없자 괜시리 이의를 제기 했기 때문인가.. 싶은 마음에 위축이 되었다. 지역에서 활동을 한다는 것, 제대로 된 대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으며 활동하려면 여러모로 피곤한 부딪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원구를 시작으로 각 지역구의 문화재단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예술인 지원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우리 지역 재단에서도 ‘우리들의 영웅’이라는 제목으로 공영영상을 촬영하고 공연 사례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어려운 시기에 강동아트센터의 갖추어진 무대에서 양질의 공연콘텐츠를 만들 뿐 아니라 합리적인 연주비까지 지원받았다는 데에서 지역 예술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강동구는 서울의 외곽에 위치해 교통 등의 지리적 요건이 단점으로 꼽히지만 문화재단이 위치한 ‘강동아트센터’는 서울 안에서도 손꼽힐만한 대형 공연장이다. 유명 가수나 클래식 연주자들, 오페라와 뮤지컬 등이 주민들을 위해 자주 무대에 올려지며, 자연스럽게 향유계층의 문화는 꽤 조성이 되어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 예술인들에게는 열려있지 않은 무대로 인식된다. 주민들의 향유를 위해 외부 유명 예술가를 초대해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진행하는 바람에 정작 지역 예술가의 활동에는 주민들이 큰 관심과 만족을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복합적인 고민을 안고 맞이한 2021년이었다. 마침 <협치강동구회의>라는 ‘민관 협치 기구’가 조성이 되어 구청을 통해 주민자치 위원으로 참여해달라는 제안이 왔다. 협치회의 내 문화분과에서 ‘종다리아트스테이지’라는 예술축제를 주관하는데, 전문예술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잦은 회의에 대한 부담과 더불어 예술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을 주민들과 혹시나 마찰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이왕 지역에서 제대로 활동을 이어가자 결심했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예상했던대로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전문예술인 뿐 아니라 지역에서 오랜시간 활동해온 생활예술인 그리고 일반 주민이 함께 모여 의견을 모아가다보니,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다양한 지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지역 내에 이미 자리 잡은 일종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특정 이슈에서 의견이 부딪힐 때면 알게 모르게 기존의 관계에 따른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반응들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생활문화 그룹들 간의 경계나 전문예술인들에 대한 선입견 혹은 전문예술인들의 지역 주민에 대한 선입견 등에 대한 지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업은 잘 마무리 되었지만, 과정 가운데 지역에 내재된 다층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나니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2021 강동구 민관협치사업 <종다리 아트스테이지>

#5. 2021년 ‘기회’ : 기대감 그리고 항상성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지역문화재단과 직접적인 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재단이 설립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업무가 포화 상태라 생활문화 사업 하나를 맡아달라는 간곡한 요청이었다. 3년차에 접어든 시기에 뭔가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으로 동참했다. 먼저 ‘생활문화’에 대해 재정립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달간 지역의 생활예술인, 주민, 그리고 지역에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전문 예술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대체적으로 강동지역은 생활예술인 즉, 생활문화에 대한 활동에 참여하거나 향유하는 저변이 나름대로 탄탄하다는 이야기였다. 지역 연극동아리가 ‘서울시민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인근 노래 동아리를 운영하시는 분도 강동구 내 동아리 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자랑하셨다. 주변에서 생활예술을 향유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고나니 상대적으로 지역에 거주하는 전문 예술인들은 강동구를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 5년 전 강동구로 이사와 처음 지역 예술인 모임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강동구는 ‘예술의 불모지’에요”라서 적잖이 놀랐는데, 지금도 그들에게 이 동네는 ‘불모지’ 일까. 다시 물어보고 싶어졌다.

사전 조사를 통해 나름대로 정리해본 강동이라는 지역은, 생활예술인에게는 활동이 부족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저변을 갖고 있지만, 정작 이곳에 거주하는 전문예술인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곳으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 활동한 생활예술인들은 무대나 전시 등의 생활문화 행사가 거듭 될수록, 성과를 더욱 높이고 싶지만 전문적인 예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외부의 유명한 예술가나 작가를 섭외해 지역 주민의 호응을 얻었다면, 상대적으로 이런 무대의 기회가 지역에 거주하는 전문예술인들, 그러니까 같은 주민이고 어떻게 보면 이들 또한 생활예술인의 범주에 충분히 포함이 됨에도 불구하고 함께 저변을 만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주민의 입장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예술인을 사례비를 주면서까지 지역의 무대에 세우는 것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 지점이야말로 강동구의 예술생태계를 위해 꼭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로 보였다.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 재단에서 요청한 사업을 기획해 나갔다. <강동아트챌린지>라는 큰 제목 안에, 기획역량강화를 위한 워크숍인 <강동예술나래 10+10>과 기획된 결과물을 실행해 볼 수 있도록 활동비를 지원하는 <강동그린씨드> 등의 작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처음 구상한 <강동예술나래>는 원래의 주제를 살려 지역의 생활예술인 10명과 전문예술인 10명을 함께 묶어보자는 취지로 <강동예술나래 10+10>으로 정했다. 중요한 지점은 서로 다른 환경과 관점을 가졌지만, 같은 지역 안에서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해나가는 두 객체가 함께 모여 ‘틀림’이 아닌 ‘다름’을 확인하고,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이런 방향성에 대해 문화재단을 비롯한 주변에서 질문이 많았다. “분명히 싸우고 엎어질 것이다”, “의견이 모이겠나”,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등, 이미 겪어본 이들에게는 상당히 번거로워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예상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들 “필요한 일”임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들은 ‘강동구’라는 작은 지역 안에서 살며, 막상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모여본 적도 없었다. 서로를 이해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불안함 보다는 기대감으로 작용한 듯 하다.

2021 강동아트챌린지

또 한편으로는 ‘좀 부딪히면 어때, 같은 동네 사람인데’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만약 재단 직원이었다면 애초에 민원의 우려가 있는 기획은 하지 않았겠지만, 나 또한 지역 예술가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몸이 언제나 ‘36.5도’를 유지하기 위한 ‘항상성’을 지니듯, 환경과 욕구가 다른 두 존재가 만나 충격과 마찰이 일어나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나면 분명 공존의 자세로 돌아올 것이라는 은근한 확신이 있었다. 역시나 자기소개를 하는 첫 모임에서부터 줌 화면 너머로 보이는 눈빛들이 불안해 보였다. 그러나 오리엔테이션을 포함한 여섯 번의 지역예술 전문가 강의와, 여섯 번의 ‘디자인 씽킹을 활용한 조별 실습 기획 워크숍’을 통해 끝까지 살아남은 7인의 참여자 분들은 지역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특히 기획된 결과를 실행할 수 있는 활동비를 지원하는 <강동그린씨드>를 통해 강동구를 소재로 단편 드라마를 제작한 한 극작가는, 장애인으로써 지역에서 당한 말 못할 상처가 많은데,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자기 혼자였다면 배우도 구하기 어려웠겠지만, ‘동네 사람’으로 함께 모이니 한결 수월하게 진행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역의 항상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6. 맺음말 : Positioning & Quality Control 그리고 공공성과 예술성
올해 6월부터 2개월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 민간위원의 자격으로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9개 권역을 대상으로 한 아홉 차례의 ‘지역 간담회’에 참여했다. 각 지역의 예술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었는데, ‘문화분권’이 본격화 되는 시점에서 지역간담회에서 만난 많은 지역예술인들은 중앙에서 이관되는 예술인을 위한 예산이 과연 잘 사용될지에 대해 의문을 넘어선 불안감을 나타냈다. 막상 지역에서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삶의 터전을 만들어가는 주체로서의 시민성도 중요하겠지만, 자신이 지역 공동체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Positioning)에 대한 서로간의 명확한 인식이 부족해 보였다. 그리고 함께 참여한 공공기관 즉, 구청이나 재단의 담당자들 또한 지역예술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달랐다. 한 지역에서는 ‘스타 예술가 발굴’이야말로 자신의 지역이 문화도시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임을 설파했다. 인지도가 낮은 예술가 여럿을 지원하느니, 한명의 스타를 키워 지역 경제를 살려나가자는 취지였다.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라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도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어느정도 정리되고 나니, 지금은 문화분권 시대를 대비해 각자의 지역 수준에 맞는 나름의 질적인 척도를 세워나가야 하는(Quality Control) 과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에이션(mediation)’이라는 말이 있다. ‘조정, 중재, 중개, 매개, 화해’ 등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미디에이터(mediator)’라고 한다. 다양한 욕구를 지닌 객체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언어의 온도를 맞추고 이해도를 높여나가는 존재이다. ‘지역’이라는 포괄적인 개념 속에서 예술활동을 영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한창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청년세대의 전문 예술인이, 지역에서 예술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다른 욕구가 분명한 공공기관과 주민 사이에서 지역의 문화와 충돌하거나 수용되는 소모적인 과정 속에 굳이 뛰어들어야할 필요는 없다. 3년간의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정리된 생각이라면, ‘지역 예술’은, 하나의 독립적인 영역으로 인식하고, 지역예술생태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데 흥미와 보람이 없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조율하느라 써야 할 이 많은 에너지가 결국 아깝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는 점이다. 이점은 예술인을 바라보는 기관과 주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역의 예술생태계를 가꾸는 일에 있어서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지역의 예술성을 책임질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얼마나 가치있게 활용할 수 있느냐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바라보는 예술은 ‘공공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세금을 투입해 나온 결과물이 얼마나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고 주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느냐는 지극히 행정적인 기준으로 예술을 바라보기 때문에, 유명한 예술가의 공연이나, 작품이 아니고서는 대중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은,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을 주민의 일상 한복판에 쉽게 전시하거나 무대에 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비단 이런 복잡한 생각이 아니더라도 지역사회가 예술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느냐는, 그 지역의 무명한 예술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서 여실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술의 ‘공공성’은 예술의 ‘예술성’이 담보되어야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 '2021 지역형 청년예술 사업 성과 평가 프로젝트 도시문화 Lab 담론집'에 기고한 글을 다듬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