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창궐하기 두 해 전쯤, 한 지원사업을 접수하기 위해 서울시청을 찾았다. 그날은 접수 마감일, 마감시간을 1시간여 앞둔 오후 5시이였다. 책상이 빼곡히 들어앉은 문화예술과 사무실에는 접수창구부터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까지 지원사업을 접수하기 위해 모인 예술인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악기를 메고 접수 서류를 든 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음악가와 헤드셋을 쓰고 준비해온 지원서류를 반복해서 읽고 있는 청년 예술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홍대에서 한 인기 끌었을 법 한 차림과 아우라를 지닌 밴드 멤버들도 함께 모여 서서 무심한 듯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눴다. 내 손에 들려진 번호표가 300번대를 훌쩍 넘어선 것을 보면, 적잖은 예술인들이 마감날인 오늘 많이 몰릴 것 같았다. 6시가 다가올수록 무거운 공기가 현장을 짓눌렀다. 선착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정도 무게의 공기가 느껴진다 다니, 합격자 발표날이 되면 얼마나 더 큰 압박이 될지 눈에 선했다. 수년, 십수 년 동안, 저 자유로운 예술을 하겠다고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것처럼 열심히 해왔을 텐데, 정작 마주한 현실은 끝없는 평가와 경쟁, 경쟁, 또 경쟁이었다. 물론 오늘은 조금 다르다. 아는 동료와의 경쟁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의 소리 없는 경쟁이었다.
내 앞에는 한 청년이 유난히 두꺼운 지원서류를 들고 서 있었다. 어색한 듯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문득, 활동 분야가 뭔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는 곳과 하는 일 등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작성한 지원서를 손을 훑어내려 보이며, 원래 하고 싶은 것은 이 작업이 아닌데, 지원사업에 되어야 생계를 유지하며 예술활동을 이어갈 수 있어서, 하기 싫지만 지원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목소리에는 언제나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이미 익숙한 듯, 대수롭지 않은 한숨이 묻어났다. “세상이 원래 그런거지..”라고 말하는 듯. 그러고 보니 그와 내가 서 있던 줄 위를 지나갔을 300여명의 ‘만 39세 미만의 청년예술인’들은 어떤 마음이었지 궁금했다. 그 중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예술을 위한 지원을 받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아니, 이런 구차한 변명과도 같은 지원서류를 쓰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의 예술 세계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행복한 예술인이 얼마나 될까. 돈이 많은 것은 부럽지 않을 수 있어도, 자신만의 시간이 많은 이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의 단면이었다.
이제 사무실 끝자락에 놓인 파티션 모서리만 돌면 3시간 가까이 기다린 접수 줄의 끝에 서게 된다. 이제 남은 하루는, 지원서를 쓰느라 짜내어 버린 마음과 생각을 조금 쉬게 해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5시 59분. 순간 한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한 사람이 지나갈 때 느껴지는 옷깃의 바람, 혹은 에너지의 기운이 사라질 때쯤 그녀는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사이에 놓인 유리문 앞에 서서, 물끄러미 시계를 들여다본다. 출구 너머로 보이는 엘리베이터는 이제 막 1층을 떠나 위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5시 59분 59초. 벽걸이 시계와 휴대전화를 번갈아 보던 눈길이 멈추고, 매정하리만치 하얀 그 손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유리문의 손잡이를 걸어 잠갔다.. 그와 동시에 ‘땡’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엘리베이터에서는 터질 듯 가득 찬 예술가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유리문에 매달려 두드리며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열어달라고, 제발 열어달라고, 부산에서 기차 타고 이제 막 도착했는데, 서류라도 내게 해달라고, 분홍색 케리어를 든 한 청년의 먹먹한 목소리가 유리문 틈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린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내가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도 그 순간이, 그곳의 휘몰아치는 괴로운 공기가 생생히 느껴진다. 마치 좀비 영화에서나 봐왔던, 유리문 한 장 사이로 비치는 휑뎅그레한 눈동자들은 무사히 ‘세이프’한 다른 예술인들을 원망하는 듯 보였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공간 안쪽의 예술인들은 괜스레 눈을 피하고 고개를 숙인다. 조금 전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던 앞자리 화가 청년도 시선을 어디로 둘지 몰라 애꿎은 손톱만 쥐어뜯고 있다. 오늘 지원서를 무사히 제출했다고 해서 이 많은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리란 보장도 없으면서도, 그마저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저 유리문 밖의 사람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몰라, 그저 멍 하니 서 있었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이 ‘게임’의 룰은 누가 정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머물 쯤, “315번, 들어오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옷도 벗지 않은 채 이불속으로 들어왔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누구를 위한 지원인가, 왜 이런 지원제도를 만들었는가. 문을 잠그던 그 손길은, 그 사람은 또 얼마나 괴로웠을까. 부산에서 왔다던 분홍색 케리어를 든 그 청년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 상황 속에서 예술을 해야 하는가,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이 온 머리를 가득 채웠다. 감정이 격해지자 ‘지원 사업 따위’라는 생각과 함께 지원받지 않고 예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이윽고, 당장의 먹고사는 일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나만의 예술활동 -연습을 하고, 사색을 하고, 창작을 하는 일련의 과정-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예술가로서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쓰고 남은 시간에 돈을 버는 것만으로는, 일상을 영위하기 쉽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자, 분주했던 나의 마음은 다시 냉정한 현실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술가를 위한 제도와 정책이 과연 정말 예술가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예술정책에 대한 고민이 차오를 때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작금의 예술지원정책이 불과 5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발전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예술정책이 예술인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드디어 예수인들에게 피부로 와닿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 씁쓸한 생각도 들지만, 여전히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끊임없는 연구와 변화가 필요한 현실이다. 혹자는 예술인들은 왜 지원에 목을 메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 자립 할 수 있도록 시장을 볼 줄 알아야 하고, 행정과 기획에 눈을 뜨며, 시류에 맞게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막상 예술인 당사자가 되어 본다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예술과 예술 자체에 집중하는 소위 순수예술의 경계에서 예술가의 정체성을 조금만 깊이 생각해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된다.
미국의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Howard S. Becker)는 예술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회적으로 정의된다고 말했다. 붓으로 그린 회화 작품의 경우 예술로 여겨지지만, 털실로 뜨개질을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닌 공예로 간주된다. 하지만 같은 작품이더라도 누군가의 그림은 예술로, 누군가는 취미생활 정도로 치부하기도 한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연예인들의 작품 활동을 이르는 ‘아트테이너’도 대표적인 예이다. 예술의 경계와 더불어 예술인의 경계 또한 여러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예술정책과 제도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인임을 증명하는’ 절차가 생기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 복지법 상 예술을 ‘업’으로 하여 예술활동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제도로 ‘예술활동증명’을 받도록 홈페이지에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기간 동안 공개 발표된 예술활동 또는 예술활동으로 인한 수입을 증명해야 하며, 요즘 이뤄지는 대부분의 지원사업은 이 ‘예술활동증명’을 받은 예술인에 한해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 즉, 예술과 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과정이 과연 예술인의 입장에서 고려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사회적으로 예술 생태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정책과 제도로 예술인을 지원하게 된 과도기적 시기인 만큼, 현재로서는 예술인의 입장보다는 행정 중심의 지원 형태가 많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서울 또는 수도권에 거주하거나,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인이 아닌, 보다 먼 지역으로 갈수록, 예술에 대한 그리고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약한 것을 보게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처럼, 지역 간의 편차가 예술가의 성장과 지역의 예술생태계 발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인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한 생태계로 굳어져 버린다면 다양한 지역적 정체성을 담은 예술문화는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바라기는 ‘예술정책의 온도’가 예술인에게 너무 차갑지 않길 바란다. 진정한 한류란 대한민국의 ‘잘 팔리는 예술 상품’이 넘쳐나는 흐름이 아닌,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졌을 때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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