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술정책이 피부에 와닿기까지
48.56% vs 47.83%. 고작 0.73%, 30만표가 채 되지 않는 근소한 차이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 때문일까, 선거가 끝난지 2주가 지났지만 주변에서 느껴지는 갈등과 긴장의 분위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특히 요즘은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을 중심으로 여론이 다시 양분되는 추세이다. 이에 새 정부 출범까지 5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국정 과제를 세워가야 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다. 예술가로써 바라보는 현실이라면, 선거철에서 조차 찬밥신세였던 예술정책에 대해, 새 정부가 얼마나 관심을 가져줄지 기대감보다는 불안감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선거는 언제나 그랬듯 더 나은 정책을 놓고 국민의 평가를 받으려 하기보다, 정당과 사람을 앞세워 이슈몰이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기 바빴다. 다수의 국민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자극적 사안을 중심으로 이념과 지역, 성별과 세대의 갈등을 조장했으며, 후보 당사자의 국정 운영 능력을 살피는 것이 아닌 후보자와 그 부인 등 주변인의 흠결을 폭로하는 네거티브 전략이 주를 이뤘다. 선거 막바지에는 깊은 고민과 공감의 과정을 모두 생략한 한 줄 짜리 정책 공약 남발로 찬반을 둘러 싼 대중 선동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몇몇 자발적인 소규모 모임를 제외하고는 어디에서도 진정성 있는 토론의 장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앞선 글들에서 밝혔듯,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가 도래하면서 나의 예술활동은 결국 중단되었다. 억지스럽게 활동을 고집할 수도 있었지만, 이전과 달리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 나만의 꿈을 고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를 대신해 자신의 예술 활동을 쉬면서까지 5년 동안 육아와 집안 일을 도맡아 온 아내에게 미안해서라도 어느 때까지 현실 외면 할 수는 없었다. 코로나는 예술가로서 충실히 –탁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온 나의 인생 길에서 “왜”라는 질문을 더욱 가열차게 던지게 해준 기폭제가 되었다. ‘왜 나는, 왜 세상은, 왜 사회는’으로 이어진 대중 없는 질문은 ‘왜 정책은’이라는 생각 앞에서 잠시 머물게 되었다. ‘정책’이라는 단어는 예술가로 살아오면서 만나지 못했던 것이었다. 부러 알아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누구도,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 때문에 얼마나 중요한지 비로소 피부에 와닿게 된 것이다.
#2. 코로나 3년차, 어떻게 버텼나
대통령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2년 동안 피해온 코로나가 우리 가족에게도 찾아왔다. 막둥이가 어린이집에서 걸려왔는지, 큰 증상 없이 가벼운 코감기처럼 오더니 언니에 이어서 아내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까지 옮겨왔다. 위중한 증상은 없어서 큰 다행이었지만, 지난 2년간 제대로 된 가족 여행 조차 꾹 참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왔으며,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부스터 샷까지 망설임 없이 모두 맞아온 터라 사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 이틀, 격리 기간이 지날수록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남들처럼 여행도 다니고 할 걸 하는 생각이 솟을 만큼 답답한 시간이었다. 반대로 아이들은 못보던 텔레비전을 마음 껏 볼 수 있어서였는지 아주 즐겁게 보내주었다.
격리 해제를 앞두고 문득, 2년의 코로나 시기를 어떻게 버텨왔는지 돌아보았다. 예술활동이 끊기니 다른 일을 해야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늘 그랬듯, 만족스러운 선택을 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나마 꿈과 비전, 그리고 사명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일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회를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코로나 관련 해외 기사를 보며 왜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예술인에게 발빠른 대처를 해주지 못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SNS를 통해 관련 부처 담당자에게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고, 나름대로 코로나 관련 기사를 찾아 열심히 공유했다. 효과는 미미했지만 스스로 오픈톡방을 만들어 예술인들과 토론의 장을 열어보려고 애썼다. 간절한 마음이 닿아서일까, 자연스럽에 예술정책과 관련된 목소리를 내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하나, 둘 생겨났다. 시간이 지나자 정부에서도 프리랜서를 비롯한 상대적인 소외계층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결정적으로 코로나 시기를 무사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의 지원에 있었다. 마음이야 이런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잘 벌어서 오히려 다른 이들을 돕고 싶었지만, 무명한 예술가로써 단번에 그런 일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대신 프리랜서 예술인을 비롯한 긴급 지원으로 몇 번의 위기를 넘겼으며, 개인 사업자로 등록해 예술활동을 해온 덕분에 소상공인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서울시를 비롯한 거주 지역구의 문화재단에서도 별도로 예술인을 위한 지원이 있어서 때때마다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고마웠던 지원은 민간의 자발적인 상호 지원에 있었다. 몇몇 예술단체에서는 자신들의 사업비를 털어 예술가를 위해 이자를 받지 않고 빌려준 것이다. 나 또한 세 차례나 이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와 같은 경험 덕분에 이후로 지원제도에 대해 당사자성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3. 예술지원의 다양한 관점
처음에는 예술지원의 대상과 규모를 바라보게 된다. 누구에게 얼마나 지원해주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제도와 정책’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이 또한 무척 복잡한 구조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얼마나 빨리’ 지원이 이뤄지는지에 대해 모든 사람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예술인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의 경우 예술인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지 수일 안에 신속하게 지원이 이뤄졌다는 소식은 수많은 국내 예술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취소된 지원 사업의 지원금에 대해 반환요청을 하지 않겠다는 등의 ‘예술인 당사자 중심의 관점’을 담은 정책은 역시나 문화 선진국 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지원제도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일은 지원을 받는 대상을 둘러싼 다양한 구성원과의 관계에 따라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지원의 대상과 규모 그리고 신속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지원의 ‘시기’와 ‘형태’이다. 예술가의 성장 시기 또는 생애주기에 따라 지원 효과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단기로 지원하느냐, 혹은 여러차례의 단계적인 장기 지원이 이뤄지는 지 등의 형태에 따라서도 예술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 시기의 긴급 지원형태가 현금을 즉시 지급하는 ‘직접지원’이라면, 예술활동을 전제로 활동비용 또는 프로젝트 사업비의 명목으로 지원하는 등의 다양한 간접적 형태로 설계 할 수도 있다. 어떤 시기에 어떤 형태로 지원을 하는지는 정책을 연구하고 설계하거나 집행하는 기관을 통해 결정된다. 따라서 예술 현장과 지원 기관의 괴리가 깊을수록 예술가와는 상관 없는 피상적인 지원이 이뤄지기도 하며. 반대로 예술의 현장을 잘 이해하는 기관이 지원을 맡게된다면 예술가로서 예술적 성장을 뒷받침할 절호의 기회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4. 새 정부의 예술정책
이렇게 보내온 팬데믹의 2년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는 어느 때보다 예술정책에 관점을 두고 후보자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전의 모든 선거에서 그랬듯 예술정책에 대한 후보자들의 공약 발표는 가장 나중에 이뤄졌다. 우리나라에서의 예술 정책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자질을 평가하는데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악세사리나 다름없이 여겨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특히 현 정부는 가장 먼저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와 시정 조치’ 통한 예술인의 권리 회복을 약속해 예술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임기 마지막이 되도록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술인들은 이재명 후보의 ‘문화 예산 2.5% 확보와 문화예술인 기본소득 지급’을 앞세운 예술정책에 지지를 표하며 SNS를 중심으로 지지를 표현했다. 이 외에도 문화기본권 보장, 지역 문화자치 강화, 청년 문화정책 수립 확대 및 문화콘텐츠 세계 강국 등을 표방했다.
윤석열 후보측 또한 7개의 공약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전 국민 문화향유 시대’를 표방한 윤석열 후보는 문화비용 소득공제 확대를 통한 문화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등, 향유자의 문화 향유를 대폭 강화하는 방향을 내세웠다. 또한 ‘블랙리스트 사태’를 의식해서인지, 창작발표의 내용에 간섭하지 않고, 청년예술의 목소리를 키우는 것을 약속했다. K-컬처의 세계화를 비롯한 문화 산업의 선진국을 이루겠다는 것 또한 이재명 후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문화유산 전담조직을 신설하는 등 전통문화유산을 위한 공약과 더불어 장애예술인을 위한 공정한 활동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공약은 이재명 후보와 차이를 보였다.
이 공약들은 이제 ‘윤석열 정부’의 예술정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모든 공약들이 과연 현장의 예술인들과 충분한 숙의와 공감의 과정을 거쳤는지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류에 따른 K-컬처 등 산업 중심의 예술에 대한 이해와 관점은 예술인들에게 괴리감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청년예술 정책 또한 마찬가지이다. 표를 의식해 한 두 차례 어쩔 수 없이 소통의 자리를 가진 것만으로 충분히 이해했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장애 예술인에 대한 지원 또한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는 것 만이 능사가 아니기에 더 깊이 있는 관점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려되는 점은 전문가 집단의 목소리만을 반영한 정책 개발이다. 모든 분야의 숙제이기도 하겠지만, 현장에 삶을 맡기고 생존하는 예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은 정책이, 과연 이번 정부에서 만들어질 것인지 예민하게 바라봐야 할 것이다. 과거의 폐단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치지 말고 깨어있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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