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나라‘청년예술인’의 현주소
‘대학입시’가 최종목적인 우리나라의 전문예술인육성 과정 속의 무수한 예술인들은, 졸업과 함께 야생의 생태계에 몸을 던질 시기를 목전(目前)에 뒀을 때야 비로소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다. 정신없이 활동을 이어온 이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옆사람과 경쟁하며 단편적인 비교만 해오던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자신의 예술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해 슬럼프에 빠지거나, 방황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설령 자신만의 예술적 방향을 잡았다 할지라도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부지원사업에 목을 매어 울며 겨자먹기로 타협하는 자신을 보며 예술가로서의 자긍심이 아닌, 자격지심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사회현상의 핵심에는‘제도와 정책’이라는 명확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것을 친절히 가르쳐주거나, 안내해주지 않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2. 재난 속에 드러난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다양성
세월호참사와 메르스사태는 우리 사회가 사회적 재난 가운데에서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프리랜서 예술인들은 계약서도 한 장 쓰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공연이 취소 됐다. 자국의 슬픔을 예술로 위로할 길이 막혀버린 상황 속에서 어느 해외의 유명 가수의 내한 공연을 바라보아야 하는 마음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예술가들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가운데 상심한 마음을 겨우 추슬러갈 때쯤, 블랙리스트 사태가 벌어졌다. 지원을 해주어야 할 정부에게 검열을 당한 현실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치명적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모든 예술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세월호와 메르스, 그리고 블랙리스트와 코로나 사태를 관통하는 흐름 가운데 예술의 사회적 역할 및 예술인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이 첨차 대두되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취약한 영역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안팎으로 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청년예술인의 경우, 취업과 진로, 결혼과 육아 등 생애주기에 따른 저마다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예술활동을 이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정책은 이들 상황의 다양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청년 예술인들은 불안한 일상 가운데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밀도있게 구축해나가기가 쉽지 않다. 예술적 역량과 열정이 아닌 예술활동을 뒷받침 해주는 물리적, 경제적 환경에 따라 기회의 불균형이 찾아오게 된다. 여성 청년예술인의 경우 의지와 상관없이 결혼과 육아로 인해 예술활동의 기회가 전혀 다르게 주어진다.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지녔더라도 결혼과 함께 활동이 중단되는 모습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점들을 충분히 고민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정책에 있어 다양성이 발현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3. 지역거버넌스와 청년예술인의 민감한 관계에 대하여
또한 청년예술의 삶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지역의 격차는 결코 무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문화적 기회가 서울과 수도권의 중앙에 집중된 우리나라는 지역에 따라 예술적 성장의 기회가 크게 차이 나기 때문에, 많은 지역 청년예술인들은 서울로 올라와 예술활동의 기회를 찾는다. 그리고 이로인해 발생하는 모든 물리적, 재정적 부담은 청년예술인 자신의 몫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문화분권 시대의 예술정책에 있어 지역 정체성을 지닌 청년예술인들의 당사자성을 살려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4. 다양한 당사자성을 지닌 청년예술인을 위한 정책마련 필요
이처럼 청년예술의 정체성만을 놓고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예술정책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당장 위원추천의 성비와 연령층 비율을 놓고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현실 가운데 과연, 구별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 받아야 할 장애 예술인과 앞으로 더 늘어날 외국인예술인에 대한 정책마련이 잘 이뤄질지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예술인들의 예술정책 참여가 늘어나고 다양한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담겨진다면 유의미한 변화를 이뤄낼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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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TF 주최로 2022년 6월 3일 금요일에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예술현장의 다양성을 반영 할 수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선임제도의 필요성 : 문화예술진흥법을 중심으로' 토론회에 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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