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전통음악

#15. 뿌리 깊은 나무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해금산조의 현대적 계승에 대한 단상-

ontheRoad 2025. 2. 23. 00:10

현대의 전통음악 계승에 있어서 슬픈 점이 있다면, 예술 콘텐츠(창작자의 악곡 또는 공연 등)와 창작자가 소비재 상품으로 소모되는 현실에 대한 전통음악계 내의 문제의식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는 (당연하게도) 생존과 성취 혹은 경쟁을 위한 상품으로서 콘텐츠와 창작자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정부지원사업이 예술활동을 위한 재원마련의 절대적 대안인 현실 가운데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고민보다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한 작품 및 공연의 기획이 중요해진 이유이기도 하겠다. 한편으로는 지원 받은 예산을 당해년도에 모두 지출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도 분명 작용할 것이다.

전통의 계승은 전통적 콘텐츠(작품)의 원형을 지켜나가는 것과, 이를 기반으로 현재성과 미래적 상상력을 발현함으로써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이 당면한 과제이다. 기성세대는 대중에 대한 민감도보다는 전통을 수호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회적 책임이 강할 수 밖에 없고, 보다 먼 세대일 수록 현실적인면 -예술가로서의 생존과 예술적 욕구 실현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얼마나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느냐일 것이다. 그러나 전통예술계의 세대간 격차에 대한 고민을 수면 위에 올려놓기는 현실적으로 요원할 따름이다. 오히려 여전히 연대와 화합보다 생존과 경쟁을 위한 관계의 게토화 혹은 개인주의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음을 목도한다.
 
요즘 해금산조보존회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해금산조는 다른 악기의 산조에 비해 뒤늦게 생겼고, 계보를 잇는 명인 또한 많지 않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가장 큰 스승 격인 해금 명인으로는 지영희 명인의 제자인 김영재 명인이 있다. 대표적인 해금산조는 '지영희류 해금산조'이다. 얼마전 두 곳의 지영희 해금산조 보존회가 설립되었다.  그 중  하나인 <사단법인 지영희 해금산조 보존회>는 민속악회 시나위의 회장과 추계예술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홍옥미 명인이 대표이다. 홍옥미 명인은 1975년 동경 국립극장에서 지영희류 긴산조를 초연한 것으로 알려졌다.(아사히신문 1993.05.07) 이곳은  2024년까지 총 3회의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사단법인 지영희류 해금산조 보존회
 

또 다른 곳은 <사단법인 지영희 해금산조 보존회>는 김애라 명인(서울시국악관현악단 악장)을 대표로 2021년에 창단되었다. 이곳은 최태현 명인의 지영희류 해금산조의 흐름을 이어가며, 지영희의 경기음악, 굿, 무용, 피리, 삼현육각 등의 음악을 연구 보존 계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2003년 중앙해금연구회를 시작으로 2021년에 지영희 해금산조 보존회(최태현 門下)로 단체 명칭을 변경해 80여 회원의 참여로 창단연주회를 열었다. 2023년에는 제2회 정기연주회도 열었다. 

사단법인 지영희 해금산조 보존회

 
이 두 단체는 이름만 놓고 본다면 '류'자만 있고 없을 뿐 누구라도 같은 단체로 볼 수 밖에 없다. 물론 각 단체가 지향하는 가치와 목적이 존재하겠지만, 큰 틀에서 하나의 류파를 계승하기 위한 보존회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해 해금계 전반의 충분한 공론이 없이 중복 된 성격의 단체가 설립된 것은 아쉽다. 이런 흐름이라면 대학 출신 별로 해당 학교 교수를 중심으로 해금산조 보존회를 만들어도 이상 할 것이 없을 것이다.

 
사실 '지영희류'라고 한다면 이제는 연주의 스타일에 다양성이 있을 뿐 뿌리는 하나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해금산조 류파로, 현존하는 다른 류파인 '한범수류', '서용석류', '김영재류'에 비해 이미 잘 보존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해금산조는 가야금 산조나, 거문고 산조와 같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누군가는 문화재로서 명맥을 이어가야 하는 미래를 예측 할 수 있다. 지영희류 해금산조의 선대 계승자는 엄연히 김영재 명인지만(해금산조 무형유산이 지정된다면 당연히 김영재 명인이 최우선순위겠지만), 이미 거문고산조의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기에 다음 세대에서 이후 과정을 준비되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살펴본다면, 자연스럽게 보존회 설립의 목적이 '무형유산'으로 지정될 미래의 지영희류 해금산조에 대한 막연한 대비의 목적도 갖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금산조 보존회의 설립은 향후 무형유산으로서의 지영희류 해금산조에 대한 초석이 되는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근래 들려오는 여러 소식을 살펴보면 이들 보존회로 인해 '보존'보다 '반목'이 일어나는 분위기임을 감지할 수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제는 누구도 무시 못할 명인의 반열에 오르신 선생님, 선배님들이고, 어엿한 전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후배와 제자들이 모여서 나름의 의미를 갖고 보존회로 모였는데 이들의 모임으로 인해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해금계가 불안하게 느껴진다. 

해금산조해설_성금연 엮음, 『다시보는 지영희 민속음악 연구자료집』

 

물론 위의 각 보존회 활동을 들여다보면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전승되어온 가락을 복원하고 새로운 창작을 이루는 등 창의적인 음악적 시도를 하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영희류 해금산조'라면 보존회의 설립에 있어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한다면 '지영희류'는 보존회가 없으면 소멸될 위기에 있는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해금산조를 연주 할 수 있는 연주자도, 명인을 이을 제자도 턱없이 부족한 시대였지만, 이제는 선조들의 노력으로 이미 각 대학과 예술중고등학교에서 오랜시간 전승이 이루어졌다. 충분히 보편화 된 류파인만큼, '보존회'보다는 '연구회'가 적합하다고 본다. '보존회'라는 이름만으로도 향후 단체의 소속 여부에 따른 계승 자격을 논할 수 있는 갈등의 분위기가 조성될 것임이 충분히 예측되기 때문이다. 10년 혹은 20년 후라면, 이들 보존회에 먼저 소속된 구성원들은 지영희류 해금산조 보존에 대한 우선적 전승 권한을 주장 할 근거가 마련된다. 이것을 다음 세대의 해금 전승자들 간의 또다른 갈등을 만들어낼 것이다. 또한 지금도 이들 보존회의 각 단체 대표자와 동년배의 해금 명인들은 이곳에 가입하기도, 또 같은 이름의 세번째 '지영희류 해금산조 보존회'를 만들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소멸 위기에 있는 장르나 악곡을 위한 보존이라면 보존회에 소속된 이들에게 보존의 책임과 권리가 주어지겠지만, 지금의 지영희류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 중 어느 '지영희류 해금산조 보존회'에 소속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외의 해금 연주자들이 지영희류를 보존할 자격과 권리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이들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진정한 보존회로서의 역할과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다면, 단지 반복적인 정기연주회로 전락해버리면 안될 것이다. 소멸의 위기에 있는 전통이라면 자주 반복함으로써 정착 될 수 있게 해야하겠지만, 지영희류 해금산조라면 이미 전공을 준비하는 초등학생도 짧은 산조 전바탕을 연주하는 현실이기에, 단지 긴산조의 복원과 재연 또는 작곡가에 의한 창작곡의 반복적 발표보다 고차원적인 노력과 큰 틀에서의 연대로써 보존회가 세워져야 할 것이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지영희류 해금산조 보존회'의 존재가 '보존'보다는 '선점'에 더 우선을 둔 것처럼 보인다. 지영희 명인이 남기신 해금산조라는 유산을 진정으로 계승하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보존회 자체의 경쟁 구도보다는 대학 입시곡이나 콩쿨, 오디션곡 등 '서열과 평가를 위한 산조'로 전락해버린 현실을 극복하고, 다시금 '산조'의 예술성을 되찾기 위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근래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김영재류 해금산조 보존회'도 마찬가지이다. 김영재류 해금산조의 전승과 보존의 중요성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그 이전에 지영희류 보존과 발전에 대한 흐름이 먼저 정리되어야 한다고 본다. 만약 지영희 명인의 직속 제자이자, 국악계의 어른이신 김영재 명인께서 일찌기 지영희류 해금산조 보존회를 만드셨다면 지금 같은 반목의 소식이 들리지 않았을 지 모른다. 오히려 이로 인해 김영재류 해금산조 보존회의 뿌리가 더욱 견고해졌을 것이다. 작금의 현실은 김영재류 해금산조 보존회마저도 지영희류 해금산조 보존회와 경쟁구도를 형성 할 수 밖에 없는 수평적 위계에 놓여져 있다.
 
또한 '보존'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김영재류 해금산조 보존회만큼이나, '한범수류 해금산조 보존회'와 '서용석류 해금산조 보존회'에 대한 전승자들의 토론과 고민이 더욱 시급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리 한범수 명인과 서용석 명인께서 해금 전공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결코 이 두 류파의 전승 가치를 떨어뜨리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 콩쿨과 입시곡으로도 선택되지 못한 채, 학습 과정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명인과 교수라는 직책을 떠나 해금 산조를 전승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점은 각자의 책임과 문제의식으로 새겨져야 한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쪽과 저쪽의 선을 그어 저쪽에서 연주를 하면 이쪽에서 제명이 된다고도 한다. 부디 소문이었으면 좋겠다.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진 21세기에 여전히 구시대적 관습이 남아 반목과 분열의 틈을 만들어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계승은 '세력'이나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점하는 것'으로 계승의 우선순위가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욕망을 잠시 내려놓고 이 작은 전통의 숲을 넓은 눈으로 바라본다면 각각의 나무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절대적인 것이 있을까. 모두가 분열하고 자멸한다면 이 모든게 아무 의미가 없어질 게 뻔하다. 성취와 성과를 통한 계승만이 목적이 되어버린다면 평생을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온 동료들의 예술적 가치, 삶의 가치를 누리지 못한 채 메말라버릴 것이다. 다음세대에게 건내줄 풍성함은 온데간데 사라진 채, 옳다고 믿어온 몇가지 단편적인 악곡만이 남아 박물관에 전시 될 수도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무해하고 무용해보이는 무수한 존재들과 기꺼이 공생하며, 숲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한그루의 나무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