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전통음악

#8. 세월호 참사 그리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부쳐

ontheRoad 2022. 4. 17. 23:29

#1. 여기 사람이 있다

416일이 가까워오면 마음 한켠이 묵직해진다. 올해로 8주년을 맞이할 만큼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혀 그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은 걸 보면, 그동안 피해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더 괴로웠을지 가늠 조차 하기 어렵다. ‘세월호라는 단어는 제주도민들의 ‘4.3’만큼이나 입밖으로 뱉어내기가 망설여지는 어려운 말이 되었다. 난 그들과 아무 연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중에라도 세월호라는 단어가 떠오르면 이어서 바다, 300, 학생, 생명, 무책임, 죄책감, 망각, 회피..’ 라는 단어들이 솟아오른다. 주체 할 수 없는 미안함이 왜 사라지지 않는지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그 미안함이 인간으로써 당연히 가져야 할 감정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아무런 죄가 없는, 조금의 잘못도 하지 않은 아이들의 무고한 죽음을 되돌릴 수도, 어떤 금액으로도 보상 할 수 없기 때문에 진실 규명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배에 사람이 있었다. 흔들리는 배 안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설레어하며 웃고 떠들던 사람이 있었다. 배는 험난한 바닷길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게 만들어졌다. 모르긴 몰라도, 전복이 되었을 때 아니, 그 전에 어떻게 해야 승객이 무사 할 수 있을지 수많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물 위에 띄운 것이다. 그 배는 수백명의 국민을 태운 작은 국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배를 책임져야 할 선장이 자신의 배 안에 사람을 버려둔 채 도망나왔다. 국가는 결국 그들을 지켜내지 못했다. 우리는 그들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생명이 붙어있고, 가족이 있으며 꿈을 꾸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여기에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이 있다.

 

2014년의 참담함을 견디다 못해 비정규 계약직이었지만 어느정도 미래가 보장 되어 있었던 교직을 내려놓기에 이르렀다. 예술가로써의 진로와 꿈에 한참을 이어오던 고민과 내적 갈등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참지 못할 만큼 크게 부풀어 올라있었다. 내가 살아온 예술계에서라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만났던 제자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잠시나마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우산이라도 마련해보자는 꿈도 생겼다. 어느새 나 자신의 꿈과 미래만을 향해 있던 시선은 주변의 크고 작은 문제를 찾아 살피고 있었다.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그 다음은 무얼 해야 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나를 ‘Next Station’으로 이끌어 주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 나는 결국 재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은 채 모교를 떠났다.

 

#2. 또 다른 세월호 참사,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2014년 한 해를 슬픔 가운데 보내고, 몇 해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 일어났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들어볼 법한 블랙리스트라는 용어는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의 명단을 뜻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국민과 문화예술인의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할 우리나라 정부가 자국의 예술인 개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사찰, 검열, 지원배재 등, 실질적인 압력을 통해 기회를 빼앗고 예술가로써의 삶을 파괴한 반민주적 범죄행위이다. 이 사건은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김미도 연극평론가가 201599, JTBC지원자에 작품 포기 종용순수예술 정치 검열의혹보도를 통해 정부의 예술검열의 사실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2016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도종환 의원실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회의록에서 블랙리스트의 단서를 찾아냈고, 이어서 10월에는 2015년에 작성된 블랙리스트 명단이 공식으로 존재했음이 보도되었다. 여기에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동참한 예술인 594명과 세월호 시국 선언에 동참한 문학인 754명을 비롯해, 당시 야당 후보 지지선언을 한 8,125명까지, 9,473명의 예술인을 정부가 검열했다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는 이 사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집권세력이 국가기관, 공공기관 등을 통해 법·제도·정책·프로그램·행정 등의 공적(公的) 또는 강요·회유 등의 비공식적 수단을 동원하여,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문화예술인들을 사찰·감시·검열·배제·통제·차별하는 등 권력을 오·남용함으로써 민주주의 원리를 파괴하고, 예술 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한 국가범죄이자 위헌적이고 위법, 부당한 행위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1-위원회 활동보고서, 문화체육관광부, 2019.2, 20

공연예술분야 블랙리스트 실행 구조-「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결과 종합 발표」

그렇다면 이 블랙리스트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던 것일까. 20185월에 발표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결과 종합 발표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의 문체부 관리리스트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먼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의 지원기금 주관기관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신청자 명단을 전달하면, 문체부는 인적사항이 포함된 그 리스트를 국정원과 청와대에 전달한다. 이후 국정원은 교육문화수석에게 배제명단을 전달하고, 교문수석은 문체부 비서관에게, 문제부 비서관은 예술정책관에게 이 배제명단을 전달한다. 예술정채관이 문체부 장차관에게 명단을 보고하면, 이들이 승인을 하고, 해당 사무관을 통해 다시 주무기관에 내려보내 실행을 하는 구조이다.

 

#3. 블랙리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처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블랙리스트의 피해를 입은 많은 예술인들은 문재인 정권이 제 1호 공약이었던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를 내걸었지만 정작 피해 예술인들의 명예회복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고 말한다. 또한 예술인권리보장법과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조직의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지난 217일 황희 문화체육부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이수 5, 제도 개선 성과와 과제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변화된 예술 행정을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후속 조치를 책임 있게 수행하고, 예술계 회복과 재도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일 윤석열 정부의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목된 박보균 후보자도 8개부처 장관 인선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블랙리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할 수도 없고 그건 과거의 어떤 악몽 같은 기억이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요 정부 블랙리스트 문건 현황 및 규모 -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결과 종합 발표」

진정한 사과란 피해 당자가 납득하고 이해 할 때 비로소 끝이 난다. 이를 위해서는 피해 당사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진정성 있는 태도가 수반되어야 함은 말 할 것도 없다. 사과의 방법 또한 피해자의 입장을 배려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국가와 국민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이라면, 정부의 태도가 미치는 영향은 훨씬 클 수 밖에 없다. 선례가 남기 때문이다.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 보다 성숙한 문화로 존중받는 사회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때로는 애써 발버둥 쳐야만 겨우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현실이 버겁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말고 부단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01
블랙리스트 규탄 광화문 시위 참여(2018, 2020)